냉장고 문을 열 때, 그냥 ‘뭐 먹을 거 없나’ 싶어서 열잖아요. 근데 가만 보면, 그 안은 진짜 작은 세상이에요. 나의 소비습관, 기호, 식습관까지 다 드러나거든요. 경제학 수업을 듣지 않아도, 냉장고 하나만 보면 그 사람의 '생활 경제'가 보여요.
가령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우유가 있다고 쳐요. 당신은 어떻게 할래요? 그냥 버려? ‘아, 이거 괜찮겠지’ 하고 마셔? 아니면 문 닫고 잊어버릴래요? 이 간단한 선택에도 사실은 ‘기회비용’이라는 개념이 숨어 있어요. 이미 산 우유를 버리는 건 돈을 날리는 거고, 억지로 마시는 건 원래 마시고 싶었던 다른 걸 포기하는 셈이죠. 그냥 냉장고를 닫아버리는 것도요, 사실은 선택을 '미룬' 거예요. 근데 이게 쌓이면 나중에 더 큰 낭비로 돌아오더라고요.
또 냉장고 안의 음식들을 보고, ‘왜 이렇게 먹을 게 없지’라는 생각, 자주 하죠? 근데 진짜 음식이 없어서라기보다는, 내가 지금 원하는 게 없는 거예요. 샐러드팩이 있고, 계란도 있고, 남은 카레도 있는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가요. 이건 경제학에서 말하는 ‘효용’, 즉 만족감의 문제예요. 선택지가 있지만, 그중에 내가 ‘먹고 싶다’고 느끼는 게 없으면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.
그리고 냉장고를 한 달만 잘 들여다보면, 나의 소비 습관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요. 자꾸 사 놓고 안 먹는 채소들,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는 반찬들, 또 왜 그렇게 소스는 많은지. 이건 기업의 ‘재고 관리’와 똑같아요. 냉장고 속이 늘 넘쳐난다면, 나는 지금 ‘재무관리’에 실패하고 있는 셈이죠. 반면에 남은 음식을 조합해서 다음 식사를 만드는 사람은 꽤 괜찮은 운영자예요. 불필요한 낭비 없이 자원을 잘 돌리는 거니까요.
결국 냉장고는 단순히 음식 넣는 공간이 아니에요.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, 어떤 걸 포기하고, 어떤 방식으로 자원을 쓰는지를 보여주는 거울 같아요. 냉장고 속을 정리하다 보면, 생각보다 많은 걸 배우게 돼요. 절약, 우선순위, 효율, 그리고 결국은 나 스스로에 대한 통찰까지도요.
그러니 다음번 냉장고 문을 열 때는, 그냥 '먹을 거 찾는 시간'이 아니라, 나의 생활을 돌아보는 작은 관찰의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. 이게 바로, 냉장고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진짜 경제학이니까요.